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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22:42
그런데 이제 밥의 피그말리온이 행맨인...
밥은 조각가가 될 줄 알았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부수고 새로 만들더니 결국 이런 일을 하는구나. 밥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온종일 무기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일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마음 한 구석이 바스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밥은 작은 돌을 깎았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외피를 내리칠 때마다 스스로의 힘에 흔들림을 느끼고 부서지는 잔해를 보며 덧없음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손 끝에 새로운 생명이 드러났다.
아주 작은 별조각에서 연못까지 밥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파괴 끝에 새 것을 창조하는 이 작은 취미를 밥은 더없이 사랑했다.
밥은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책상 한켠에 둔 작은 세계를 바라보았다.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좋을텐데. 이를테면 수풀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여우같은.
그날 밤 밥은 아주 오랫동안 골라두었던 모든 돌들을 하나씩 꼼꼼히 고른 끝에 주먹만한 돌 하나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깎고 다듬어 가꿨다.
밥은 그 돌을 행맨이라 불렀다. 행맨은 돌 주제에 어찌나 잘 굴러다니는지 조금만 잘못 내리쳐도 사방을 내리치며 다른 돌들을 깨트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 끝으로 살살 어루만지면 금세 손이라도 탄듯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촉감을 뽐냈다. 뭐가 되려고 이렇게 투정을 부릴까? 밥은 궁금했다.
행맨의 정체는 전혀 뜬금없는 순간에 드러났다.
무기 테스트를 하던 날 몰래 돌을 줍던 밥과 마주친 여우 한 마리. 밥은 그 순간 집에 있던 행맨이 떠올랐다. 오늘 내가 네 친구를 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밥은 저녁을 같이 하자는 권유에 집에 기다리는 게 있다고만 한 후 쌩하니 사라졌다.
밥은 아주 소중히, 공들여 행맨을 조각했다. 아주 오랫만에 느끼는 몰입이었다. 행맨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널 만나기까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내게 선물하고픈 이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렇게 질문과 대답 하나마다 행맨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행맨이 거의 완성되어가던 무렵 밥은 해상근무 발령을 받았다. 행맨을 데려갈까 말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밥은 행맨에게 집을 지켜달라고 얘기했다. 널 다 완성시키고 갈테니 이 곳을 지켜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밥은 묵묵히 다시 행맨의 외피를 깎아냈다.
그게 벌써 반 년전의 일이었다.
- 행맨. 나 왔어!
밥은 정말로 반가웠다. 살짝 먼지 가라앉은 냄새와 채광좋은 볕이 드는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자리한 넓은 책상과 그 위에 있을 작은 행맨. 행맨...?
- 베이비?
- ...????????????
책상 위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행맨이 없고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밥이 뒤를 돌아보려는데 갑자기 두터운 뭔가가 밥의 목과 허리를 졸랐다. 명색이 군인인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당하다니! 밥은 어이가 없어 온 몸을 버둥거렸지만 팔은 오히려 밥을 더 꽉 껴안고 몸을 밀착했다.
- 안 오는 줄 알았어. 언제 오는지 안알려줬잖아. 왜 그랬어. 나 맨날 기다렸어.
- 당신 뭐야? 왜 남의 집에서,
- 여기 우리 집인데?
- 뭐?
- 밥, 베이비가 그랬잖아. 여기 우리 집이라고. 밥의 집, 행맨의 집.
- 너...
- 보고 싶었어. 정말로.
밥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살짝 헝클어진 금발에 녹색 눈을 한 남자. 허리를 꼭 안은 두터운 팔. 등 뒤로 들리는 박동.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밥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 행맨?
- 응, 응. 베이비 이제야 알았구나.
그제서야 밥의 손 끝이 조심스레 행맨의 손 위로 겹쳐졌다. 말도 안되지만, 누가 말해도 믿을 수 없겠지만... 행맨이 거기 있었다.
- 날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고 했잖아.
- ...응. 기다렸어?
- 응. 나도 그랬으니까.
굳이 소리내어 부르지 않아도 밀려오는 감정에 밥은 눈을 감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집이 사실 여기 있었음을, 그의 손으로 만들어냈음이 느껴졌다. 가장 아끼는 존재의 울림을 통해.
- 나 왔어, 행맨.
- 잘 왔어. 베이비.
보고 싶었어.
색창도 뎁힐 겸 옛날에 써뒀다 묵혀둔 거 꺼내봄
밥은 조각가가 될 줄 알았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부수고 새로 만들더니 결국 이런 일을 하는구나. 밥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온종일 무기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일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마음 한 구석이 바스라지곤 했다. 그때마다 밥은 작은 돌을 깎았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외피를 내리칠 때마다 스스로의 힘에 흔들림을 느끼고 부서지는 잔해를 보며 덧없음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손 끝에 새로운 생명이 드러났다.
아주 작은 별조각에서 연못까지 밥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파괴 끝에 새 것을 창조하는 이 작은 취미를 밥은 더없이 사랑했다.
밥은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책상 한켠에 둔 작은 세계를 바라보았다.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좋을텐데. 이를테면 수풀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여우같은.
그날 밤 밥은 아주 오랫동안 골라두었던 모든 돌들을 하나씩 꼼꼼히 고른 끝에 주먹만한 돌 하나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깎고 다듬어 가꿨다.
밥은 그 돌을 행맨이라 불렀다. 행맨은 돌 주제에 어찌나 잘 굴러다니는지 조금만 잘못 내리쳐도 사방을 내리치며 다른 돌들을 깨트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 끝으로 살살 어루만지면 금세 손이라도 탄듯 따뜻하고 보들보들한 촉감을 뽐냈다. 뭐가 되려고 이렇게 투정을 부릴까? 밥은 궁금했다.
행맨의 정체는 전혀 뜬금없는 순간에 드러났다.
무기 테스트를 하던 날 몰래 돌을 줍던 밥과 마주친 여우 한 마리. 밥은 그 순간 집에 있던 행맨이 떠올랐다. 오늘 내가 네 친구를 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밥은 저녁을 같이 하자는 권유에 집에 기다리는 게 있다고만 한 후 쌩하니 사라졌다.
밥은 아주 소중히, 공들여 행맨을 조각했다. 아주 오랫만에 느끼는 몰입이었다. 행맨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널 만나기까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내게 선물하고픈 이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렇게 질문과 대답 하나마다 행맨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행맨이 거의 완성되어가던 무렵 밥은 해상근무 발령을 받았다. 행맨을 데려갈까 말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밥은 행맨에게 집을 지켜달라고 얘기했다. 널 다 완성시키고 갈테니 이 곳을 지켜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밥은 묵묵히 다시 행맨의 외피를 깎아냈다.
그게 벌써 반 년전의 일이었다.
- 행맨. 나 왔어!
밥은 정말로 반가웠다. 살짝 먼지 가라앉은 냄새와 채광좋은 볕이 드는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자리한 넓은 책상과 그 위에 있을 작은 행맨. 행맨...?
- 베이비?
- ...????????????
책상 위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행맨이 없고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밥이 뒤를 돌아보려는데 갑자기 두터운 뭔가가 밥의 목과 허리를 졸랐다. 명색이 군인인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당하다니! 밥은 어이가 없어 온 몸을 버둥거렸지만 팔은 오히려 밥을 더 꽉 껴안고 몸을 밀착했다.
- 안 오는 줄 알았어. 언제 오는지 안알려줬잖아. 왜 그랬어. 나 맨날 기다렸어.
- 당신 뭐야? 왜 남의 집에서,
- 여기 우리 집인데?
- 뭐?
- 밥, 베이비가 그랬잖아. 여기 우리 집이라고. 밥의 집, 행맨의 집.
- 너...
- 보고 싶었어. 정말로.
밥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살짝 헝클어진 금발에 녹색 눈을 한 남자. 허리를 꼭 안은 두터운 팔. 등 뒤로 들리는 박동.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밥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 행맨?
- 응, 응. 베이비 이제야 알았구나.
그제서야 밥의 손 끝이 조심스레 행맨의 손 위로 겹쳐졌다. 말도 안되지만, 누가 말해도 믿을 수 없겠지만... 행맨이 거기 있었다.
- 날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고 했잖아.
- ...응. 기다렸어?
- 응. 나도 그랬으니까.
굳이 소리내어 부르지 않아도 밀려오는 감정에 밥은 눈을 감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집이 사실 여기 있었음을, 그의 손으로 만들어냈음이 느껴졌다. 가장 아끼는 존재의 울림을 통해.
- 나 왔어, 행맨.
- 잘 왔어. 베이비.
보고 싶었어.
색창도 뎁힐 겸 옛날에 써뒀다 묵혀둔 거 꺼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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