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aep.club/549106723
Code 85e4
view 829
2024.07.06 21:25



크리스는 딱복이에게 뭐든 해주고 싶었어.
부모님이 앞으로 후견할 아이라고 데려온 그 애는 너무 작고, 옷이 헐렁할 만큼 말랐고, 눈빛도 불안해보였거든. 이 속으로 치미는 감정은 동정일까, 연민일까, 그게 사실 뭐가 중요하겠어. 크리스는 제게 생긴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었어. 나랑 놀자! 하고. 


크리스는 정말 딱복이를 잘 챙겼어. 시니어와 슈슈는 크리스가 동생이 갖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소곤거렸지. 크리스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딱복이가 제 특별한 발명품을 보며 입으로는 별로라고 말하면서 두 눈을 빛내는 걸 좋아했고, 그 애가 신기해 할 만한 재밌는 실험도 실컷 했지. 쓰지 않는 차고는 크리스와 딱복이의 낙원이었어. 둘이서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글라이더를 타고 날다 떨어졌을 때, 무릎이 온통 까지고 발목을 삐면서도 깔깔 웃었던 아이들이야. 그 순간의 추억은 참 행복했지. 


그랬는데 말야.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딱복이는 더는 크리스와 놀지 않았어. 늘 미래에 대해 생각했고, 불안해했지. 둘이 늘 함께 있던 차고에는 어느덧 크리스만이 남게 되었지. 크리스는 쓸쓸함을 혀 밑으로 베어물고 과학 분야에 몰두했어. 기실 크리스는 과학 쪽으로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월반 이야기가 나올 만큼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지. 그가 제법 이른 나이에 대학교에 진학하여 기숙사로 가기 전 날, 딱복이가 찾아왔어. 오랜만에 보는 딱복이는, 여전히 눈에 띄게 예뻤어. 녹색 눈동자는 알 수 없는 빛으로 일렁거렸지. 해바라기. 크리스는 이제 딱복이를 볼때마다 제 심장이 간질거렸던 이유를 알아. 딱복이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어.


대학교 진학 축하해. 
고마워. 
이제는, 방학에만 보겠네. 


그 말에 크리스는 웃었어. 


방학이 아니어도 우린 자주 보지 못했잖아. 지금도 오랜만인걸.
…그렇지. 
숀. 벙커힐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딱복이는 벙커힐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그곳은 웨스트포인트로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이 모인 유년사관학교였지. 시니어나 슈슈는 아직 어린 딱복이가 벙커힐로 가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딱복이의 고집이 워낙 완강했기에 어쩔 수 없었어. 딱복이는 그곳을 거쳐 육사로 진학해  한 사람 몫을 하는 훌륭한 군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크리스는 딱복이가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는 지는 전혀 알지 못했어. 딱복이는 크리스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씩 웃었어. 


내가 누군데, 당연히 잘 지내고 있지.


그렇게 말했는데 말야.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날이야. 벙커힐 폐교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이 무장을 하고 시위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뉴스로 사방에 퍼져 나갔지. 물론 그 일원 중에는 딱복이도 있었어. 그가 든 총구는 정확히 교문 바깥에 서있는 전차를 향했어. 많은 생도들이 가족의 부름에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 바깥으로 떠났어. 하지만 딱복이는 다르지. 딱복이는 벙커힐을 지킬거야. 반드시 그러리라고. 


하지만 그 총구는, 누군가 확성기로 그를 부르는 순간 흔들리고 말았지.


숀.


크리스가 딱복이를 불렀어.
딱복이가 절대로 쏠 수 없는 사람이지. 딱복이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어.




...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성인이 되면 카잔스키 가문의 후견이 끝난다는 걸 알게 된 딱복이는, 아무리 카잔스키 가족이 저를 가족처럼 대해준다 해도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겠다. 그러다보니 불안감에 얼른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거기에 더해 카잔스키 장군 부부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훌륭한 군인이 되려 했겠지. 그러다보니 크리스를 좋아하면서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멀어진 거고. 벙커힐을 거쳐 당당히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성숙한 군인이 되고자 한 것이 딱복이의 생각이었는데 벙커힐이 폐교된다는 생각에 완전히 패닉이 왔겠지. 벙커힐은 웨스트포인트라는 미래로 가는 교두보였는데 그 다리가 갑자기 끊어진 거임. 순간적으로 미래를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딱복이는 무장 대치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거기에 크리스가 말리러 왔으면 좋겠다.


딱복이는 카잔스키 가문에 머물러도 가족이 아닌 객이고, 제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
사실은 크리스가 처음 만난 그날 딱복이의 빈 손에 자기를 쥐어준 건 모르고 말야. 



이렇게 서로 엇갈렸던 크리스딱복이 ㅂㄱㅅㄷ



#아이스매브 크오 크리스딱복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