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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0:38
ㅈㅇ


바비 동생인거 보고싶다





바비가 네잇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친척네로 데리고 간건 어쩌면 충동적인 행동이나 마찬가지였어. 카시트도 없어서 어디선가 주워온 바구니 속에 목도리와 니트로 둘둘 감싸진 네잇을 바비는 픽 부부의 집 문을 두드리고 재빨리 숨어 지켜봤어. 인상 좋은 픽 부부는 추운 날씨에 바구니 속에 든 아이에 놀라서 재빨리 품에 안고 곁에 있던 편지를 심각한 얼굴로 읽더니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지. 다행이다. 만약 픽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바비는 네잇을 고아원 앞에 둘 수 밖에 없었을거야. 마지막으로 만진 동생의 작고 따뜻한 손이 잊혀지질 않았어. 그래도 네잇은 자신과 다르게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겠지. 바비는 아무도 없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어. 잘한거야, 잘한 일이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연락해온건 네잇이었어. 헤어질때 갓난쟁이었는데 핏줄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던건가? 아님 픽 부부가 알려준건가? 네잇은 바비에게 꼭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어. 곧 결혼하는데 형을 부르고 싶었었다고. 말하는걸 들어보니 다행히 찰리와 클라이드에 대해서는 모르는거 같았어. 알아봤자 좋을게 없는 인간들이지. 아마 픽 부부가 네잇에게 적당히 잘 꾸며서 거짓말을 한거 같았어. 바비가 네잇을 데리고 나가서 혼자 돌아왔을때도 관심없던 인간들이니 아마 자신이 입을 열지 않으면 네잇은 친부모에 대해 평생 알 일이 없거야. 출생신고을 하기 전에 픽 부부에게 네잇을 보낸게 잘한 선택이었다고 바비는 생각했어.

네잇과 헤어진 바비의 손에는 주소와 번호가 적힌 쪽지와 함께 네잇이 동생들과 찍은 가족 사진이 들려있었어. 헤어질때 뭐라고 했더라, 픽 성을 달고 있지만 우린 가족이니까 종종 찾아오라고 했었나. 온기를 느껴본게 언제였지. 밀어내야하나?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어. 쌓여있는 부재중을 확인한 바비는 또 꼭지가 돌아있을 페리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와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엑셀을 밟았어.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시절의 기억은 최대가 3살에서 5살이라고 이야기가 있어. 하지만 네잇은 더 어릴때를 기억하고 있었어. 선명하진 않지만 자신과 닮은 사람의 품에 안겨있던 기억, 그 사람의 손가락을 쥐던 기억, 자신에게 뭐라 말하던 기억.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흐릿해지긴 했지만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티비에서 바비를 우연히 봤을때 네잇은 본능적으로 저 남자가 기억속의 사람이라는걸 알 수 있었어. 오래전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걸 알았을때 부모님이 이야기 해줬던 자신의 친형. 나의 가족.

네잇은 함께하지 못했던만큼 지금이라도 바비와 함께하고 싶었어. 가족이 주는 사랑이 얼마나 좋은건지 알고있었으니까. 가족 사진을 꺼내 동생들을 소개할때 바비의 얼떨결해하는 모습에 네잇은 웃으며 다들 형을 만나보고 싶어한다고 이야기 했어. 자주 만나고 싶다고. 우린 가족이니까 자주 만나자고. 그런데 어두운 바비의 얼굴엔 두려움이 섞여있었어. 왜지? 네잇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티를 내진 않았어. 형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멀어지는 바비의 차를 보며 네잇은 발걸음이 가벼웠어. 품에는 바비의 온기가 남아있었어.



브랫과 동생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한 날 바비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했어. 전날 뭔가 또 신경에 거슬렸지 페리 때문에 목에 멍이 들어서 들어서 목소리 상태가 영 아니었어. 그냥 나갔다간 군인 출신인 네잇과 브랫이 이상함을 느낄게 뻔했어. 갑자기 몸상태가 좋지 않아 못나갔다는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걱정과 애정이 섞인 답장이 날라왔어. 이런 메세지를 받아본적 없는 바비는 어색함에 답장을 읽고 또 읽었어. 병문안을 가도 되냐는 물음에 집에 다른 사람이 오는걸 남편이 안좋아한다며 대신 다른날 찾아가겠다 약속했어. 바비는 네잇의 존재를 페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어. 얼마나 더 숨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바비는 최대한 네잇의 존재를 페리에게 숨기고 싶었어.

네잇의 번호와 문자를 주고받은걸 삭제하자마자 페리가 들어왔어. 타이밍 한번 아슬아슬하네. 속으로 혀를 찬 바비가 몸을 일으켜 페리의 곁을 지나치려하자 머리가 강하게 뒤로 꺾였어. 자신이 왔는데 바비가 아무말 없이 지나치려는게 못마땅했나봐.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페리의 손을 강하게 뿌리친 바비는 페리를 노려봤어. 오늘도 집에는 욕설과 둔탁한 소리가 가득했어.



오, 드디어 네잇의 동생들을 본 바비는 저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사를 참을 수 없었어. 오래전이지만 멀리서 본 친척도 클라이드를 많이 닮긴 했었지만 정말 네잇의 동샌들은 친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아있었어. 마치 네잇의 성장 과정을 한곳에 모아놓은 느낌이었어.

형제들의 집은 크고 따뜻했어. 자신와 페리와 사는 집과는 정반대였어. 따듯하고, 애정이 기득했지. 거실에 어색하게 서있는 바비의 손을 집은 네잇이 식탁으로 이끌었어. 다 같이 식사를 하며 네잇은 그동안 바비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했어. 바비는 잘 살고 있다고 했어. 일찍 독립했고 대학 후배와 결혼해서 큰 회사에서 일한다고. 행복하다고. 일부는 진실이긴 했어. 가출을 한거지만 독립이긴 했고 계약결혼이긴 하지만 페리가 자신의 대학 후배긴 했으니까.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잘 꾸며진 이야기를 듣는 네잇은 즐거워보였어. 식사 내내 식탁에선 웃음과 말소리가 멈추지 않았어.

집에 돌아온 바비는 차갑고 조용한 자신의 집이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어. 사람이 사는데도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 마치 네잇의 집에서 있었던 시간이 꿈인거 같았어. 이게 현실이고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인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비는 어쩐히 비참한 기분이었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잇과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어. 특별한걸 하는건 아니었지만 평화롭게 웃고 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불안도 늘어났어. 혹시나 페리가 변화를 알아채 뒷조사를 할까봐. 그래서 네잇의 존재를 알까봐.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하는 페리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인내심이 긴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만나게하고 싶지 않았어. 몇십년만에 만난 형이 매일매일 전쟁같은 결혼생활을 보내느라 온 몸에서 멍이 빠질 일이 없다는걸 알면 네잇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동정하려나? 아니, 실망할지도.

시간이 흘렀고 벌써 네잇의 결혼식이었어. 네잇과 만난지 몇일 안된 느낌인데 벌써 결혼식 날이었어. 하얀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은 행복해보였어. 바비는 자신의 결혼식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네잇의 결혼식은 절대 잊지 못할거 같았어. 그리고 그날 속이 안좋아 병원에 들린 바비는 임신을 확인했어. 의사의 말을 믿지못해 한 테스트기에도 선명하게 두줄이 박혀있었어. 테스트기를 손에 꽉 쥔채 웅크린 바비는 기뻐해야 하는지 절망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안잡혔어. 한때는 아이를 원한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어.

안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었나? 페리가 네잇의 존재를 알았어. 비밀을 만들었다고 얼굴만한 두꺼운 손이 쉴세없이 날라왔어. 끔찍한 소리가 집 안에 가득찼어.

시간이 흘러도 바비의 배는 부르지 않았어. 남성 임신이기도 했고 산모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티가 안날수도 있다고 했어. 다행인건가? 그래서인지 막달이 가까워져도 페리는 바비의 임신 사실을 몰랐어. 입덧때문에 밥을 못먹는걸로 또 깨작거린다고 짜증만 낼 뿐이었어.



긴 고통 끝에 혼자서 병원도 아닌 안방 욕실에서 아이를 낳은 바비는 두려웠어. 차마 지우지 못했지만 막상 아이의 얼굴을 보니 이 아이에게 사랑을 줄 자신이 없었어. 분명 자신과 페리 밑에서 자란다면 부모처럼 망가진 사람이 될거같았어.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난 바비에겐 피 범벅인 욕실과 안방을 정리할 시간은 없었어. 빨리 편지를 쓰고 페리가 돌아오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야했어. 바비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이 작은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어.

네잇을 픽 부부의 집 앞에 두고 왔던 그날처럼 바비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들어 겨우 문을 두드렸어. 멀리서 숨은채 문이 열리고 브랫이 아이를 품에 안는걸 본 바비는 안심하며 몸을 돌렸어.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네잇이라면 아이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워줄거라고 생각했어. 멀리서 자신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는 네잇을 뒤로하고 바비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닦으며 대기시켜놓은 택시에 올라탔어. 이제 자신만 사라지면 완벽했어.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페리와 네잇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최대한 멀리 가야 할텐데..



지금 요한은 뜨거운 해변가를 걷고 있었어. 차를 이렇게 많이 탄건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생각했어. 걷는 시간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어서 엉덩이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거든. 심지어 버스에서 잠든 사이에 소매치기도 당해 가지고 있는거라곤 어린시절의 모습이 든 앨범과 휴대폰 뿐이었어. 휴대폰에 카드를 등록해두길 잘했지 안그랬으면 요한은 처음 온 동네 길바닥에서 노숙을 할 뻔 했어. 만약 노숙을 했다면 네잇과 브랫이 잔소리를 한바탕하고 랜스 삼촌과 테리 삼촌이 놀리며 비웃었을거야. 두 사람이 깔깔거리는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요한의 눈에 작은 집 한채가 들어왔어.

파란 문 앞에선 요한은 다시 한번 더 휴대폰 거울을 보며 떨리는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정돈했어. 그리고 출발하기 직전 네잇이 했던 말을 떠올렸어. 겁이 많아,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다가가야해. 적당히 힘을 실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자 얼마 안가 문이 열리고 꼭 보고싶었던 얼굴이 나왔어. 요한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어.


"바비 프로스트씨 맞으세요? 전 요한 프로스트 픽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어서 사랑을 줄 자신이 없던 바비가 동생과 아들을 떠나보낸 겁쟁이 바비.. 근데 네잇과 요한이 둘다 버림받았다고 생각 안해서 바비를 찾아와 사랑을 주는..게 보고싶었을지도..?

슼탘 브랫네잇 페리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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