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aep.club/550273984
Code 7244
view 7226
2024.08.02 02:46
만약 나한테 셜록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정말로 불행했을 것 같음

남의 사정에 관심없고 알고싶지도 않고 심지어 낯선 사람들이면 더더욱 안물안궁임. 근데 지나가는 사람을 한 번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방금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슨 이유로 지금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온갖 원치 않는 tmi를 알게 되는 능력이라니ㄷㄷ 상상만 해도 끔찍함.

이런 능력이 있으면 아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원만한 인간관계라는 건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눈속임 위에 성립되는 건데, 셜록같은 능력이 있으면 그 거짓말과 눈속임이 너무 적나라하게 눈앞에 보일 거 아냐. 지인이 차가 막혀서 약속시간에 늦었다며 사과하는데, 사실 차 따위 안 막혔고 불륜상대한테 들렀다 오는 길이라던가. 윤리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대학 교수인데 사실은 숨겨진 스캔들이 있었다던가.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면 그냥 인간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될듯. 친구나 애인을 사귀기도 힘들 거고.

더 대단한 건, 만약 이런 능력을 사기꾼 같은 범죄에 사용하면 대성공할 수 있다는 거임. 실제로 모리어티는 그렇게 했잖아. 근데 셜록은 자기 능력을 좋은 일에 사용함. 경찰 수사를 돕고,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곤경에 처한 의뢰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 근데 별로 감사나 칭찬을 받지도 못함. 오히려 (내가 도와준 경찰한테) 괴물 취급 받고 뒷담화만 실컷 들어야 함. 그런데도 여전히 사설탐정 직업을 포기하지 않음.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날 비난한 인간들에게 얼마든지 온갖 방법으로 보복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도 안 함.

난 셜록이 굉장히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함. 만약 진짜로 감정이 없다거나 소시오패스라면 그렇게 못 살아.

드라마 연출에서 특히 소름끼쳤던 게, 셜록의 시야가 닿는 곳마다 "이 사람의 바짓단에는 개털이 묻어 있음: 개 두 마리를 키움" 이런 식으로 촤라락 tmi가 펼쳐진다는 거였음. 그런데 3시즌 2화에서 셜록이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만취한 상태에서는 셜록의 시야에 펼쳐지는 tmi가 막 글자가 일그러지고 괴상하게 깨져 보이게 됨.

난 저 장면을 봤을 때 처음에는 "와 연출 쩐다. 술취해서 두뇌능력이 떨어지니까, 평소에는 눈에 보이던 게 더 이상 안 보이게 되네..." 이랬는데,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아니 시발 잠깐만! 혹시 셜록 이새끼가 약을 하는 이유가 그런 거였어??"

저건 내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고 공식이 아님. 하지만 만약 나한테 셜록같은 능력이 있다면, 그래서 원치 않는 정보들로 온 세상이 가득 차 있다면, 약을 해서라도 그 정보들을 잠재우고 싶을 것 같다고 생각함. 아마 약에 취한 상태에서만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을듯

엳 베니셜록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