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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23:54

통역사가 오지 않아 4시간을 멈춰 있는 동안, 허니는 픽 중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어디에서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아닌데, 이 사막에 대체 어떤 사건이 있었길래 하필 중위에게 귀신이 쓰인단 말인가? 그때, 윈 중사와 노래를 부르는 픽 중위를 유심히 관찰하던 허니의 눈에 포착된 것이 있었다.
 그의 군복 상의에 꽂힌 펜들 중 분명 원래는 없었던 것이... 허니가 자세를 빠르게 고쳐 앉으며 중위에게 질문을 던지려 할 때, 하필이면 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어보려면 물어볼 수야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픽 중위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틈타 경위를 알아내는 것이 더 나을 성싶었으므로 허니는 입을 다물고 총을 고쳐 들었다.

*

 소대장이 감명 깊은 연설을 하던 도중 가스 경보가 발령되어, 허니는 안타까운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잘 듣고 중위님과 따로 대화할 거리를 포착하려고 했는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기자 양반의 원맨쇼를 보며 간만에 웃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유일한 민간인으로서 앞으로도 고생할 그를 애도하며 허니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딘이 기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으니 그렇다치고, 만약 샘이 종군 기자였다면 군인보다도 더 빠릿빠릿했을 수도... 헌터와 일반인을 비교하는 건 너무한가? 짧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허니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허니, 거세 장면이 그렇게 흥미로웠어? 아직도 기자 양반을 빤히 쳐다 보네."
"우리 소대 이병이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군."
"아, 그게, 아닙니다. 그냥 기자님을 보니까 작은 형 생각이 나서요."

 허니가 그제야 머쓱하게 기자 양반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민간인을 보니 민간인이 생각 났다 이건가? 연상력도 좋아."
"대학에 다닌다고 했으니까 샌님 보고 샌님 생각난 거죠. 욕하려는 건 아니에요, 비버 헌트."

 에반이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굴리며 웃었다. 허니가 미안한 눈치로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작은 형이 종군 기자였으면 어땠을지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집에서 배운 게 있다 보니 잘 했을 것 같아서요. 일단 피지컬도 군인 못지않고..."
"워우, 일개 대학생에게 평가가 후한걸. 리컨마린의 위상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아뇨, 정말로요. 작은 형 키가 콜버트 병장님만합니다."
"잠깐, 허니 너 브랫 키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아이스맨은 과장 없이 대문만한 거 알지?"

 허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 집이 다 키가 큽니다. 그럼 허니 너는 왜... ...저도 작은 키는 아닌데요. 허니가 조용히 반박했다. 성장기랜다, 성장기. 애 놀리지 마라! 그리고 다시 가스 경보가 울렸다.

*

엔시노맨의 실책으로 길을 잘못 든 브라보 중대가 폭격음이 끊이지 않는 사막을 열심히 가로지르는 동안, 허니도 눈을 가늘게 뜨고 한밤의 사막을 식별하려 노력했다. 원래 귀신은 밤을 좋아하는 법이었다. 엔시노맨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픽 중위에게 붙은 귀신이 무엇인지 벌써 알아내고도 남았을지 모르는데. 어린 윈체스터가 속으로 혀를 찼다.
 계속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는데, 이렇다 할 단서도 모이지 않고. 중대장이 계속 헛짓거리를 하니 소대장도 덩달아 바빠져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 보이고. 그나마 아직까지는 중위에게도, 다른 소대원들에게도 별 일이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인 걸까? 아니면... 폭풍전야인 걸까?

 날이 밝고, 분대장들에게 향하는 픽 중위의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간 허니가 -중간에 루디에게 또 쓰다듬을 받았다- 너무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1호차 근처에 멈춰 섰다. 마침 트럼블리가 참스를 들켜 레이에게 호되게 한소리를 듣고 있었다. 음, 참스만 문제인 거면 좋았겠다. 저걸 갖다 버리면 중위님에게 달라붙은 귀신이 알아서 나가떨어지는 거지.
 물론 그런 기적은 없을 것이기에, 허니는 간밤에 어둠을 틈타 험비 바닥에 소금을 뿌렸다. 사실 이제는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 험비가 정차한 후 크리스테슨이 내리며 험비 바닥이 까끌까끌해졌다고 의아해했다. 허니는 저번처럼 모른체하며 중위를 관찰했다. 역시 모르는 펜이 그의 상의에 껴 있었다. 하, 어디서 주워 오셨나... 일단은 저 정체모를 낡은 펜이 리틀 헌터의 타겟이 된 셈이었다.

*

 포로들을 돌려 보내며, 허니는 깨달았다. ...씨발. 이따위로 전쟁을 하면 원한 생긴 귀신이 안 붙으려야 안 붙을 수가 없겠다.
 고생길이 훤했다.
 





*****




 

 허니의 기행이 들키지 않은 채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틈만 나면 네이트 픽의 주위를 기웃거리거나 그를 관찰하는 행동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루디였다. 허니를 귀여워하며 동생처럼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헤이, 팹. 요즘 허니가 중위님한테 관심이 많아 보이지 않아?"

"그런감... 쟈는 그냥 여기저기 머리 들이미는 걸 좋아하는 거 아녀?"

 

 별거 아닌 것처럼 넘기면서도, 파피는 저도 모르게 허니의 동그란 뒤통수를 한번 쳐다보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한 것 같기는 했다. 틈만 나면 루디에게 와서 동생 취급 받고 가던 녀석이 요즘에는 그들의 험비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던 것이다. 파피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까 요즘 들어서 얼굴 보기 귀해지긴 했구먼. 우리 신참이 새로운 형을 찾았나 본디."

 

 그 말에 루디가 퍽 섭섭한 얼굴을 했다. 허니가 알았다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을 표정이었다.

 

*

 

그 다음으로 눈치챈 것은 브랫과 레이 콤비였다. 브랫이 먼저 이상함을 느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고, 얼마 안 있어 낌새를 느낀 레이가 그 즉시 브랫에게 종알댄 것이다. 브랫, 허니허니가 중위님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브랫이 피식 웃으며 총기를 닦았다.

 

“아니, 들어봐요. 진짜라니까요. 요즘 쟤가 루디랑 노는 거 봤어요?”

“안전한 곳에서 훈련만 하다가 실제로 머리통 날아갈 상황에 오니까 긴장했나 보지. 너도 첫 파병때는 쫄보처럼 누구 옆에 붙어 있었을 거 아니냐, 레이?”

“하, 참. 이 레이레이를 뭘로 보고? 저는 맨 처음부터 아주 베테랑이었거든요.”

 

레이가 투덜대며 핸들을 고쳐 잡았다.

 

둘의 대화에 에반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그는 사막에 굴러다니는 모래 알갱이들까지 취재할 의욕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니' 윈체스터 이병이 네이트 중위에게 붙어 다니기 시작함.

 에반의 수첩에 추가된 이 한 줄이 가져올 파장도 모른 채, 가엾은 윈체스터는 험비 뒷좌석에서 계속 졸고 있었다. 앞좌석 중위를 향한 연이은 밤샘 '관심'의 흔적이었다. 깨울까요? 백 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한 윈 중사가 눈빛으로 물었고, 젊은 중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히 귀여워하시는군, 중사가 태연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마치 본인은 아닌 것처럼.

 

*

 

기자 양반이 허니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은밀하게 띵즈의 흔적을 찾고 해결해야 할 허니의 입장에서, 그것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예민해진 줄만 알았더랬다. 종군 기자가 이야깃거리 쟁쟁한 선임들 두고 뭐하러 신병에게 관심을 두겠는가?

착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에반은 거의 허니의 껌딱지가 되어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가뜩이나 신경 쓸 일이 많은 시점에 기자가 따라붙으니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관심이나 더 끌고 말 거였다. 차라리 이유를 정확히 알아내는 편이 나았다.

 

“그, 기자… 어…”

 

기자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비버 헌트? 뭐라고 불러야 하지? 허니가 입 안을 씹었다. 다른 소대원들처럼 넉살 좋게 그의 별명을 부르기에는 그간 픽 중위를 쫓아다니느라 에반과 영 친해지지 못했던 탓이었다.

 

“네?”

 

다행히 허니에게 관심이 지대했던 기자 양반은 찰떡같이 그를 부르는 것을 알아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초롱초롱한 눈과 마주치자 부담스러워진 허니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음… 그게…”

 

그새 에반은 또 수첩에 펜을 바짝 가져다대고 있었다. 허니가 한숨을 푹 쉬었다. 원래 이렇게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닌데. 거친 해병들 속 유일한 민간인이다 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 감이 안 잡혔다. 입대 전 거의 유일한 인연이었던 가족들 또한 평범한 민간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도 있었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입술을 축이며 허니가 말을 골랐다.

 

“요즘 자꾸 절 따라다니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왜 그러나 해서요.”

“아.”

 

이번에는 에반이 말을 고를 차례였다. 눈을 몇 번 깜박이던 그가 흥미로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멋쩍게 웃었다.

 

“요즘 중위님 옆에 계속 붙어 다니시길래…”

“…아. 어, 음. 아하.”

 

허니 스스로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소리였다. 허니가 낭패감을 감추지 못하고 입안을 깨물었다. 중위님과 같은 험비에 타고 있으니까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역시 티가 났나 보다. 귀신이 있네 없네 장난 치는 평범한 인간들이니 그가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지는 짐작도 못하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문제였다.

기자 양반에게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합당한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중위님이 어디에서 주워온 펜을 뺏어야 합니다? 되겠냐고. 그냥 새로운 취미입니다? 더 관심 받기 딱이지. 뜨거운 태양 아래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둘째 형만큼은 똑똑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열기에 익어 더 이상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 허니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뱉고 말았다.

 

“중위님은… 멋있으시니까…?”

“오.”

 

이따위로 말하려던 게 아닌데? 즉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후회했지만,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 아니던가. 기자 양반이 그의 수첩에 곧이곧대로 ‘중위가 멋있다고 생각해서’를 적어 내리는 것을 직관하며, 허니는 그냥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설마 저게 책에 나오지는 않겠지? 그가 처음으로 입대를 후회한 순간이었다.

 

*

 

“‘멋있는 중위님’과 함께하는 기분은 어떠냐.”

“아이, 브랫도 참.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허니허니가 부끄러워하지 않겠어요?”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더니, 그러는 레이의 표정이 가장 익살맞았다.

 

“아무래도 같은 험비에 타니께… 야가 볼 때는 느보다 중위님이 더 멋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분발해야겠구먼.”

“다른 험비여도 중위님은 이기기 어려운데. 큰일났네. 그래도 좀 서운한걸, 허니.”

 

루디가 웃으며 허니의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 환장하겠는데, 변명을 할 수도 없으니 허니는 그저 이를 꽉 깨물며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저 멀리서 윈 중사와 픽 중위 콤비가 허니를 쳐다보는 표정이었다. 중사가 먼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씩 입꼬리를 올렸고, 중위는 어쩐지 멋쩍어하더니 결국에는 슬쩍 웃어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 당연히 웃기겠지 씨발… 말 한 마디로 평생 놀림받게 생긴 윈체스터가 침과 함께 탄식을 삼켰다.




젠킬너붕남 젠킬너붕붕 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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