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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22:42

 레이가 편지 뭉치를 들고 와 편지의 주인들에게 나눠줄 때, 허니는 아무 기대도 없는 사람처럼 제 자리에 앉아 웬 암염탄을 -언젠가 그 용도를 물었을 때, 그는 혹시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다-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 태도에 대해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다들 속으로는 풋내기 이병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얼마 전 그가 사냥꾼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그 짐작에는 힘이 실렸다. 가족들이 사냥을 나갔다가 변고라도 당했나 보다,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왁자지껄하게 편지가 배분된 후 레이의 손에 단 한 장이 남았을 때 겉면에 익숙한 이름이 써 있었더랬다. 잘못 온 거 아냐?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그간 다른 소대원들과 달리 어떤 편지도 받지 못하고 기대도 하지 않던 이병에게 위문 편지라도 왔겠거니 하며 레이가 편지를 흔들었다. 허니! 너 편지 왔어! 금발의 이병이 몹시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기에 다들 의아하게 쳐다 봤다.

 

 "흑흑, 우리 리틀 허니허니한테도 편지가 오는 날이 오다니! 감격스러운 날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럴 리가 없어, 이 맹랑한 자식. 숨겨둔 애인이 있었구만?"

 "아니지, 아니지. 애인이 아니라 숨겨둔 애라도 있는 거 아냐?"

 

 브라보들이 짓궂게 놀리는 와중에도 허니는 조금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편지 봉투 윗면을 찢었다. 그 속에서 나온 것은 편지 몇 장과, 라이터, 그리고 편지보다는 쪽지에 가까워 보이는 종이 한 장이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몸 조심해'. 라이터를 한 손에 꼭 쥔 이병이 입을 일자로 다물더니 편지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뭐야? 웬 라이터? 줄 거면 담배를 줘야지! 누군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다들 허니의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그가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여전히 웅성대며 편지를 훔쳐 보았다 -사실 대놓고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글씨체가 다른데. 양다리냐?"

 

 매니멀이 허니의 어깨에 걸친 팔에 힘을 실으며 물었다. 편지를 다 읽은 허니가 어쩐지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형들입니다. 웬만하면 연락이 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니네요."

 "이것저것(things) 사냥하러 다니느라 바빠 죽겠나 보구먼."

 "아무리 그래도 우리보다 바쁘겠어? 그래서 편지는 왜 보냈대? 아무리 형제여도, 우웩, 남자들끼리 편지라니."

 "이 새끼 이거 형들인 척하고 애인 숨기는 거 아니야?"

 "오, 양다리 게이? 이거 크게 될 놈이네."

 

 누가 들으면 괴롭히는 것으로 오해할 어투로 허니의 선임들이 장난을 걸었다. 라이터는 주머니에, 편지는 차곡차곡 접어 봉투에 다시 넣으며 허니가 피식 웃었다.

 

 "제가 게이였으면 이중에 최소 한 명은 벌써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말에 담긴 은유에 브라보들이 박장대소하며 허니의 자신감 내지는 뻔뻔함에 고개를 저었다. 해병 다 됐구만, 자랑스러운 자식.

 

 "편지는... 그러게요. 왜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결합 기념일지도요."

 "재결합? 누구 재결합?"

 "당연히 형들이죠. 아버지와 재결합할 어머니가 안 계셔서."

 

 덤덤하게 셀프로 패드립을 시전한 이병의 발언에 다들 조금 벙쪄 있다 혀를 내둘렀다.

 

 "야, 누가 이 자식한테 벌써 이런 거 가르쳤냐!"

 "가르치긴 뭘 가르쳐, 독학이겠지. 애 앞에서는 말 조심해야한다더니."

 "너희 형들은 뭘 했길래 재결합이라는 말이 나와?"

 

 "음, 작은 형이 가업을 잇기 싫다고 대학교에 들어간 후로 서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어."

 "왜 그래? 너도 가업 안 잇고 군대 온 게 갑자기 후회되냐?"

 "인간 사냥도 사냥이라면 사냥이지, 이 녀석은 당당한 리틀 헌터라고."

 

 왜 샘이 다시 사냥을 시작했지? 허니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 놓고 편지에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니. 그가 라이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손윗형제들이 분명히 중대한 일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으나, 허니는 경거망동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답장을 받지도 못할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것 자체도 시간상 어려웠지만, 답장을 받는다 해도 그가 원하는 답이 적혀 있을 리 없었으므로- 편지를 보내 사정을 캐물으려 한다거나, 불안함에 떨며 훈련을 그르치거나, 더 심하게는 갑작스러운 제대를 선택한다거나 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라보 2소대의 모두가 허니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자유 시간마다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단서를 찾으려 하는 허니의 눈이 투지로 불타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결과이기는 했다. 어쨌든 하루하루 마틸다 캠프를 떠날 날이 다가왔다. 허니는 이제 상관들의 헛짓거리를 이겨내 임무를 빨리 완수하고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기만을 바라야 했다. 그의 정신을 환기해 줄 사건이 생긴 것은 느닷없이 피자가 배달된 날 저녁즈음이었다. 엔시노맨이 엔시노맨한 탓에 급히 떠날 준비를 하는 틈새에서 픽 중위와 윈 중사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고 만 것이다.

 

"요즘 밤마다 추위를 심하게 타시던데, 보급품을 더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청한다고 지금 당장 해결이 되지도 않을 거고, 어차피 캠프를 떠나는 순간부터 몹수트를 입을 테니 괜찮을 거야."

"멀쩡하다가 갑자기 그러시니 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러게. 사막에도 귀신이 있나 봐."

 

 그들은 농담 삼아 하는 얘기였겠으나, 헌터 아버지와 형들을 둔 리틀 헌터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아무리 사막의 밤이 차다 하더라도 사지 멀쩡한 20대의 군인이 갑작스럽게 오한이 들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들 사이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허니뿐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장 캠프를 떠나야 할 처지라는 점이었다. 귀신이 쓰인 것이 픽 중위 본인인지, 그의 물건인지, 그가 머무는 막사인지, 혹은 캠프 전체인지... 유골이 어딘가에 묻혀 있기는 한 건지. 퇴치를 위해 알아야 할 최소 정보가 손에 쥐여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결국 허니는 그날 밤 몰래 캠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밤을 새웠다.

 

*

 

 다행히 마틸다 캠프 터 자체나 픽 중위의 막사가 저주받은 것은 아닌 듯했다. 유골 또한 발견하지 못했고, 혹시 몰라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해 두었으니 허니의 부재로 누군가 다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소금 냄새가 난다며 잠꼬대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잠시 숨을 참고 긴장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소금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허니는 그가 띵즈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야밤의 일탈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그의 선택지는 하나였다. 나다니엘 픽을 관찰하고, 대화를 엿듣고, 어떻게든 단서를 얻어 그를 보호하는 것. 다행히 허니는 작고(아니다) 소중한(아마도) 이병으로서 크리스테슨과 같이 픽 중위의 험비에 타기로 되어 있었기에 어렵지 않아 보였다.

 

 밤을 꼴딱 새웠으나 헌터로서, 해병으로서 피곤한 티라고는 하나도 없이 허니는 선임들의 사이에 껴 몹수트를 챙겨 입었다. 해병의 관점으로나 헌터의 관점으로나 완벽한 민간인인 기자 양반이 낑낑거리며 몹수트를 입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조금 웃겼다. 형들을, 그리고 이제는 소대장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허니가 오랜만에 웃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에, 귀신과 인간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운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곤 하는 만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어젯밤 잠결에 웬 검은 형상을 보았다는 누군가의 발언으로 인해서였을 것이다 -허니는 이 대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귀신 같은 건 없고(과연 그럴까? 허니가 생각했다.), 인간은 쏘면 죽잖아여."

 "누가 그걸 모르냐? 해병은 애초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트럼블리의 당당한 발언에 질린다는 기색으로 에스페라가 말했고, 해병에 대한 그의 자부심에 브라보 2소대 소대원들이 단체로 기합을 넣었다. 가엾은 기자 양반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었다.

 

 "허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허니가 딱히 토론에 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루디가 물어왔다. 몹수트의 매무새를 다듬던 그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아무래도 트럼블리의 말대로 인간은 퇴치하기 쉽, 아니, 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인데 좀 덜 싸이코패스 같네. 우리 허니허니가 제2의 싸이코 이병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싸이코는커녕 겁쟁이에 가깝지. 들었냐?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고'. 귀신 같은 건 없다, 겁 많은 새끼."

 "있다고 해도 해병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하. 본 적도 없으면서. 허니가 입꼬리만 억지로 끌어올리며 선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퇴치 미뤄서 귀신한테 괴롭힘받게 해 줄까 보다.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짜로.



젠킬너붕남 젠킬너붕붕 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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