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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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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억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스완은 항상 같은 꿈을 꿨어. 꿈속에서 스완은 중세 시대의 귀족이었어. 꿈속 스완은 항상 말을 타고 주위 사람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지. 다들 그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어. 그리고 그 시선 끝엔 항상 그녀가 있었어.

꿈을 통해서 전생을 본다? 웃기는 소리지. 애초에 전생이란 게 유튜브 같은 데서 심령술사들이나 떠들어댈 이야기잖아. 사실 어린 스완도 '그 꿈'을 그저 악몽으로 치부했어. 왜냐면 꿈속 그 귀족은 너무...너무 끔찍한 인간이었거든. 그 남자는 자기 외에 사람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지. 항상 오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착취했어. 그래, 사실 중세 시대 귀족이라면 다 그렇겠지.

하지만...하지만 그래도 스완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꿈속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야. 여자는 아마 평민이거나 그보다 더 낮은 신분의 사람 같았는데 귀족은 여자를 억지로 취하고 성안에 가뒀어. 그리곤 그녀를 성적으로 끔찍하게 착취했어. 스완이 어린 시절 불면증이 아닐까 의심받을 정도로 잠자리에 드는 걸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어.





어린 스완의 눈에도 그 남자의 사랑...애초에 이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랑이란 게 너무 기괴했거든. 사랑하면 아껴주고, 그 사람한테 모든 걸 바치고, 그 사람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뭐 아무튼 그래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꿈속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을 요구하면서 그녀를 가두고 학대했어. 꿈속 여자는 나날이 야위어서 시들어갔지. 여자의 공허한 두 눈과 마주칠 때마다 스완은 누군가 심장이 손으로 잡아 빼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꿈에서 내쫓기곤 했어. 당연한 말이지만 병원에선 심장통증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지.

어느 정도 자라고 사춘기를 겪고 철이 들고 난 후부턴 스완은 어쨋든 이 꿈에 익숙해졌어. 즉, 어릴 적보단 조금 덜 몰입해서 꿈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꿈속 귀족은 남작이라 불렸고 여자는 소작농의 딸이었지. 농지를 시찰하던 도중 우연히 그녀를 보고 사랑...여전히 스완은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주기 싫었지만! 아무튼 사랑에 빠진 남작은 저가 천한 소작농의 딸 따위에게 그런 고상한 감정을 느꼈을 리 없다며 그저 욕정 정도로 제 감정을 치부하곤 그녀를 억지로 취한 뒤 성에 가둬두고 노리개 취급을 했던 거지.

스완이 자라면서 그의 꿈도 자라는지 우습게도 그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 그 꿈은 점점 과격해졌어. 남작의 사랑은 소유욕으로 점철된 역겨운 감정 덩어리였기에 그 여자가 창밖을 바라보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했어. 그녀가 부엌데기에게 희미하게 웃기만 해도 그는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며 길길이 날뛰며 부엌데기를 죽이려고 들었지. 그리곤 매번 반항하는 그녀를 과격하게 취했어. 그 무렵 남작은 자기가 여자에게 가진 감정이 단순한 욕정이 아니란 걸 깨달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채운 사랑은 절대 보답받을 수 없었고 그도 그걸 알았기에 그녀를 더욱더 옥좼던 거지.

넌 내 것이야. 네 몸도, 네 웃음도, 네 마음도, 네 생각도 모두 다 내 것이야. 죽어서도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이러면서.





스완이 대학에 다니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을 때, 꿈도 점점 절정을 향해갔어. 그 무렵의 꿈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음습하고 질척질척한 감정들로 가득 차서 꾸고 나면 하루 종일 앓아눕게 했지. 그리고 결국 꿈속 그녀가 죽었을 때 스완은...사실 그때 기억은 잘 안 나. 엄마 말로는 그때 스완의 침대 시트가 다 땀으로 젖을 만큼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도 없는 주제에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미친 사람처럼 내뱉었다 그랬어. 그렇게 일주일 정도 앓고 나니 놀랍게도 그 꿈은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지.

정말 웃긴 건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으면서도 스완은 가끔 그 꿈을 그리워한다는 거야. 정확히는 꿈속 그 여자를. 어린 시절부터 항상 스완은 그녀가 웃길 바랐거든.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했어. 남작이 있는 한 그건 불가능했겠지만. 우습게도 스완은 그녀를 사랑해. 이 감정은 스완의 순수한 감정일까, 남작의 집념이 생을 넘어 이어진 걸까?

스완은 처음엔 자기감정을 부정했어. 남작이 자기의 전생이란 건 솔직히 그 망할 꿈을 20년 넘게 쭉 이어 꾸다 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지만…. 그리고 거울 속 남작의 얼굴이 자신과 너무나 똑같기도 했고 남작의 생각과 감정이 그에게 계속 흘러들어왔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그 여자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함을 넘어서 죄악감까지 느껴졌어. 남작이 스완의 전생이라면 전생에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놓고 생을 넘어서까지 사랑한다고? 이걸...인간이라고 봐도 되나? 괴물 아닌가? 싶었지. 사춘기 무렵에 그 꿈에 시달리면서도 꿈속 그녀를 상대로 몽정했을 땐…. 그냥 목매달고 죽어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스완의 의지인지 아니면 정말 남작의 망령이 들러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는 그녀를 사랑해. 스완은 그냥 제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지. 그리곤 다짐했어. 이 사랑엔 그 어떤 욕망도 없어야 하며 오직 죄책감만 있어야 한다고. 만약 그녀를 현실에서 만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위해 내 인생 전부를 바칠 거지만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어선 안된다고. 이십 대의 중반에서 스완은 혼자 굳게 다짐했지.

다짐이 무색하게 그의 나이가 어느덧 사십에 가까워진 지금도 그녀를 만나진 못했어. 물론 스완이 나서서 그녀를 찾아다닌 건 아냐. 사실 스완은 실제로 그녀를 만나게 되면 자기가...아니 어쩌면 자기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남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거든. 그 꿈도 대학 시절 일주일 동안 앓았던 그 이후론 꾸지 않았고. 그렇지만 스완은 여전히 생생하게 그녀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지. 절대 잊혀지지 않았어.





스완은 현재 변호사야. 스완은 철 들고 나서부터 의식적으로 남작과 다르게 살려고 다짐했기에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 물론 변호사 일이 항상 불의에 맞서는 건 아냐. 오히려 불의를 따를 때가 더 많지. 그래도 스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자주 하면서 어떻게든 남작처럼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얼마 전에 기존 로펌에서 독립해서 자기만의 작은 사무실을 차렸기 때문에 이제 더더욱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좀 더 공익성이 있는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되었지.

그날도 그렇게 사건 파일을 검토해 가며, 휘하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 스완은 제 전생에 대해 생각하기 외엔 별다른 취미가 없었기에 직원들 사이에서 워커홀릭 보스로 불렸지. 집에 가도 달리 할 게 없는 스완은 항상 야근을 도맡아 했거든. 뭐,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보스는 아냐…. 아마도? 아무튼 워커홀릭 보스답게 책상에 코를 박을 기세로 서류 더미에 파묻혔던 스완은 갑자기 사무실이 유독 시끄러워졌단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어. 그리곤 9살 때 마당에서 축구를 하다 2층 창문을 깨 먹은 이후로 처음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경험을 했어.





꿈속의 그 여자가 스완의 사무실로 살아서, 숨을 쉬는 상태로 걸어들어왔거든.

스완아를로너붕붕

오타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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