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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17:13

포스에 균형을 가져 올 선택받은 자. 범인들은 이 자가 세상의 악을 멸하고 자신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영웅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나 같은 좀 더 큰 그림을 보는 이에겐 이자야말로 비기다. 스스로 운명을 가져오지 못하는 힘은 휘둘러서 그 목적을 이뤄야 하는 거지. 세상의 균형은 내가 맞출 테니까.

의장으로 활동하며 마주친 스카이 워커는 과연 우주가 선택한 그릇이 맞았다. 노예 어미를 타투인에 남겨둔 채 콰이곤을 따라 파다완으로 제다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모순투성이였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큰 힘과 위태로운 배경은 팰퍼틴의 눈에 반짝이는 원석이었다. 팰퍼틴 눈에는 아름다운 불협화음이 제다이 카운슬에게는 위험 요소였었다. 카운슬은 아나킨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팰퍼틴 입장에선 그들의 고지식한 대처가 그저 고마웠을 뿐.

팰퍼틴은 시스 로드로서 공화국 의장으로서 여러 음침한 계획들을 준비하고 실행하느라 바빴다. 그러는 와중에도 쵸즌원에게 관심을 쏟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반짝이고 강했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예리해서 위태로웠다. 팰퍼틴은 바쁜 일정을 끝내고 가끔 어린 친구를 만나 잔잔한 호수 표면에 자갈을 던지듯 쉽게 살짝만 밀어주는 게 다였다. 모든 게 팰퍼틴의 계획대로였다. 이대로 몇 년만 더 기다리면 그의 눈은 아름다운 금색으로 타오를 것이었다.

망할 오비완만 아니었다면.

카운슬이 신뢰를 얻지 못한 제다이 기사 아나킨에게 파다완을 임명해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늙은 회색의 제다이가 꾀를 쓴 거겠지. 콰이곤의 새 파다완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오비완은 일련의 사건으로 아나킨의 파다완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만 해도 팰퍼틴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자신감 없고 내성적인 어린 스튜존인 파다완은 작은 눈덩이였다. 거대한 얼음산 꼭대기 위에서 팰퍼틴이 쵸즌원을 다크사이드로 이끌려는 계획으로 굴러떨어져 오는.

타고난 감정이 풍부한 아나킨이 사춘기를 지나며 그의 마음속 혼란의 최고조가 돼 있었다. 팰퍼틴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밀어주면 스스로 터져버릴 만큼. 그런데 어째서인지 팰퍼틴이 무슨 수를 써도 아나킨의 혼란이 더이상 커지지 않았다. 아나킨의 마음속에 생긴 '파다완의 본보기가 되는 제다이가 되어야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망할 그 의지 때문에 아나킨은 펠퍼틴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파다완의 시선을 의식해 두쿠를 베어버리지 않았다. 펠퍼틴은 조급해졌다. 다른 계획들이 완성되어가는 지금 쵸즌원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가 돼야 했었다. 다시는 어미를 잃는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팔을 앗아간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는 다크사이드로의 한 걸음을 뗐어야 했다.

팰퍼틴은 목표가 분명했다. 오랜 시간 많은 것을 투자한 만큼, 계획 중 하나가 틀어진다고 해서 거기에 매달릴 수 없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흔들지 못한다면, 그렇지 못하게 만든 것을 흔들면 됐다. 자신이 무기로 쓸 수 없다면 다른 이도 그를 무기로 쓸 수 없게끔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그의 소중한 파다완 역시 미리 싹을 잘라둬야 할 인물이었다. 고지식한 제다이에게 유능한 협상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부터가 말이 안됐다. 그리고 이런 명성을 카운슬도 인정했다는데서 이미 오비완 이라는 제다이의 능력은 충분히 팰퍼틴의 계획에 걸림돌이었다.

오더66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하지만 팰퍼틴은 늘 그래 왔듯, 차근차근 계획을 진행해갈 것이다. 일단 저 파다완이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간절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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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크를 잡아온 날 콰이곤과 더 팀은 함께했던 클론들과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승리를 위해 희생한 동료를 기리는 마음과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기쁨으로 슬픔을 묻어버리는 자리였다. 왁자지껄한 파티 분위기를 지켜보는 아나킨 옆에 오비완이 와서 앉았다. 두크를 생포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아나킨이 무언가 혼란스러워함을 인지한 오비완은 늘 그래 왔듯 다정하게 그의 내면은 터치했고, 아나킨 역시 늘 그래 왔듯 자신의 파다완에서 져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과거 어머니를 살해한 터스켄 부족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얘기하며 오늘도 오비완이 없었다면 두크역시 죽여버렸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를 살려 재판받게 하는 것이 왜 영웅적인 일인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도 얘기했다. 아나킨은 오비완의 실망이나 혐오의 반응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스승인 콰이곤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사실을 얘기하며, 어쩌면 이해받길, 어쩌면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줄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지 그의 어린 파다완에게 기대했다.

오비완은 말을 잃었다. 한참 바닥을 응시하던 오비완이 겨우 입을 열자 목소리는 그새 살짝 쉬어있었다.

"..스승님이 그런 일을 겪어서 유감이에요."

아나킨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게 두려워 여기서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리고 싶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오늘의 선택을 해주어서 감사해요. 저도 언젠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승님을 생각하며 더 나아질 수 있단 걸 잊지 않을게요."

오비완은 쉴드로 가려지지 않는 아나킨의 기쁨과 안도를 느낄 수 있었다. 옳은 대답을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아나킨의 반응을 보니 뿌듯하고 안심됐었다. 스승님은 강하지만, 여린면이 있었다. 그런 부분이 스승님을 선하게 만들었지만, 때론 위태롭게 만들었었다. 오비완은 배우는 입장인 자신의 스승에게 영향을 끼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오늘처럼 자신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해지는 아나킨을 보고 있자면 더할 나위 없는 포만감이 들었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하던 아나킨이 오비완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주먹 쥔 손 위를 감싸 쥐었다.

"...고마워. 너는.. 나에게 정말 큰 의미야."

오비완은 손을 돌려 아나킨의 손을 마주 잡고 싶은 충동을 억눌려야 했다.

"...스승님. 애착은.."
"그래그래. 제다이 코드에 위배되지. 이 시대 가장 존경받는 제다이님."

오비완이 제다이 코드를 들먹이며 되려 아나킨을 가르치려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닌지 아나킨은 코웃음 치며 두 손을 드는 제스쳐를 취하려고 했다. 오비완이 자신의 손등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나킨의 손을 맞잡기 전까지. 여전히 저편 왁자지껄한 파티 분위기와 동떨어진 침묵이 둘 사이에 가라앉았다. 둘의 표정을 보면 이것이 옳지 않은 일이란 걸 자각하고 있음에도 누구도 맞잡은 손의 힘을 풀지 않고 있었다. 오비완은 자신의 손에 얽혀있는 스승의 단단하고 유려하게 긴 손가락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감정이 없을 때 평화가 있다."

오비완의 시선은 아나킨이 맞잡은 손을 당기는 대로 따라갔다. 오비완의 손가락에 입 맞추는 아나킨의 입술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는 스승의 눈까지 시선이 옮겨졌다. 강렬하게 이글거리는 그 눈동자는 여느 때와 달리 고요해 오비완은 오싹했다. 하지만 그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오비완은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오비완의 손가락 위에 놓여있는 입술이 살짝 열렸다.

"열정이 없을 때.. 평온이 있다."

둘의 시선을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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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안돼. 이럴 순 없-."
"있습니다."

오비완은 발에 걸리는 제다이 시체를 쓰레기처럼 밀어내며 아나킨 쪽으로 돌아봤다. 아나킨은 그 말도 안 되는 장면에 거의 웃을뻔했다. 자주 꾸던 악목이라고 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자신의 파다완은 적의 시체여도 존중을 보이는 성품이었다. 그런 오비완이 제다이 로브를 걸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동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발로 밀어내는 게, 그러는 그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게 질 낮은 유머 같이 느껴졌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잖아요. 스승님."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비완의 말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나킨은 막 새로 받은 임무 수행지로 비행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던 중 동료 제다이 기사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는데, 사원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사실 그 문장도 다 뱉기 전에 홀로그램이 끊겨 아나킨은 무언가 급박한 일이 일어나고 있단 것에 일단 비행선을 돌렸다. 사원에는 제다이들이 많았으므로, 어지간한 공격에는 큰일이 없을 거였지만 무언가 큰 불안함이 아나킨을 지배했다. 아나킨은 다른 임무를 나가 있는 파다완에 연락을 넣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콰이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나킨이 다시 사원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는 동료였다. 그것도 방금까지 자신의 지휘에 따라 함께 전장을 누비며 등을 맡기던 클론들에. 아나킨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동료를 살해해야 하는 상황에 참담했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블러스터를 막아내다 무의식적으로 클론을 베어낸 뒤 지금 현실이 받아들여졌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상황에 모든 동료가 걱정되었지만 특별히 아끼는 콰이곤과 파다완이 특히 걱정되었다. 오비완의 상황을 알수없다는 것이 아나킨을 아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고요해졌다. 돌아보는 쪽에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익숙한 포스 시그니쳐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막 제다이를 베어낸 오비완이 서 있었다. 아주 어두운 포스 색을 보이며.

"이제 자신을 그만 속여도 돼요. 스승님 생각처럼 제다이는 부패했습니다. 우주의 평화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요."
"...그게 시스 로드니?"
"네. 지금은요. 전 그게 당신이면 더 좋겠지만.."

오비완은 라이트세이버를 아나킨 쪽으로 향하게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시겠죠."
"오비완 제발.."

아나킨은 처음으로 포스에게 빌었다. 시간을 달라고. 빌어먹을 시간을 달라고. 그러면 자신이 오비완을 설득할 수 있다고. 오비완이 자신을 라이트사이드에 머물게 해준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자신은 오비완을 구원할 수 없나? 그래서 이 지경까지 온 걸까? 라코하딘 임무 이후로 그가 많이 힘들어했었다는 걸 알지만, 곧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한 그로 돌아와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미친 듯이 바쁜 임무들이 끝나고 시간이 날 때 다시 대화하고, 입 맞추면 모든 게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나태했다고 포스가 내리는 벌로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오비완이 분리주의자의 생각에 물든 것은 어떻게 보면 과거 자신의 영향일 수도 있단 것이 아나킨을 괴롭게 만들었다.
크게 부딪힌 라이트세이버에서 불꽃이 튀었다 사라지기 전에 둘의 거리가 벌려졌다. 익숙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 검술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치명적이게 다가오는 날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나킨의 자세는 긴장한 반면 오비완은 검을 옆으로 한 바퀴 돌리는 여유를 보였다.

"늙은이처럼 왜 이렇게 뻣뻣하세요?"

오비완의 농담에도 아나킨의 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아나킨은 포스본딩으로 다가가 보려 하지만 오비완의 포스본딩은 단단히 닫혀있었다. 그런 아나킨의 노력을 느꼈는지 오비완의 표정에 잠시 슬픔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스승님.. 저와 같이 가요."
"..내 파다완아. 너와 어디든 함께 갈 거야. 하지만 거기가 지옥이라면, 널 보낼 수 없어."

아나킨이 먼저 오비완에게 세이버를 휘둘렀다. 아까의 팽팽하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거침없는 아나킨의 공격에 오비완이 밀리고 있었다. 강하게 내려친 아나킨의 세이버를 막아낸 오비완의 무릎이 휘청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에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은 절 못 죽여요."

오비완의 아나킨의 세이버를 크게 튕겨내고 아나킨이 휘청이는 순간 그의 목에 세이버를 들이댔다. 오비완의 붉은 세이버 불빛이 아나킨의 얼굴을 가까이서 비추었다. 붉게 그늘진 조각 같은 얼굴이 아름답다고 오비완은 생각했다.

"너는?"

아나킨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이글거리며 오비완을 노려봤다. 오비완은 잠시 추억에 빠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제다이 코드가 잘못됐다고 처음으로 느낀 순간을. 오비완은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나킨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나킨은 몸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분노에도 가까워지는 오비완의 얼굴이 슬퍼 보여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 뒤 오비완이 세이버를 휘두르자 아나킨의 세이버가 멀리 날아가고 그의 다리 한쪽에서 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나킨은 바닥으로 넘어져 잘려 나간 한쪽 다리를 보며 오비완을 노려봤다. 잘려나간 다리 단면에서 오는 고통인지 마음의 무언가가 부서져 나간 고통인지 알 수 없었다. 아나킨은 그 어떤 때보다 내면의 혼란으로 폭발할 것 같았다.

"오비완!!!!"

오비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나킨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뒤로 걸어갔다. 아나킨은 오비완이 곤란할 때면 저런 웃음 뒤로 숨어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나킨은 순간적으로 내려간 오비완의 쉴드를 놓치지 않았다. 상실감. 슬픔. 분노. 그리고 희망. 아나킨은 허겁지겁 오비완의 포스에 얽혀 들어가려 했으나 금세 다시 올라간 쉴드에 튕겨져 나왔다.

"당신의 선택이에요. 마스터."

오비완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아나킨을 남겨두고 떠났다.



별전쟁 안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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