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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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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궁정에 한 무희가 있었음.

무희는 춤을 추고 노래하는 데에는 아주 타고났음. 게다가 아주 아름다웠고, 희귀한 출신이었지. 수많은 부호들이 무희를 보고 매료되었어. 그들은 무희와 하룻밤을 지내거나, 노예로 삼거나, 심지어는 영영 가족으로 삼고자 했음. 사내들은 무희의 주인에게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주인은 끄떡도 하지 않았지. 그가 보기에 무희를 가장 값비싸게 살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든.

주인의 인내가 빛을 발해 무희는 왕의 눈에 들었지. 주인은 당장 무희를 왕의 침전에 바쳤음. 한낱 무희 주제에 무대 뒤편의 조악한 방도 아니고, 왕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다니. 주인은 무희에게 분에 넘치는 영광인 줄 알라고 했음. 왕의 처소는 그간 무희가 지내던 곳보다 수백 배는 더 호화롭고 몇천 배는 더 안락한 침대가 있었지. 그래서 무희는 기뻐했을까? 글쎄, 모르지. 어쩌면 왕과의 동침 이후 품앗이해주는 가축처럼 여러 사람에게 돌려질 처지를 걱정하지 않았을지.

놀랍게도 왕과의 동침은 하룻밤에 끝나지 않았어. 소문이 말하기를, 무희는 왕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을 갖고 있었다더라고. 왕은 후한 값을 치르고 주인에게서 무희를 샀지. 왕이 무희를 아끼는 것은 온 궁정에 소문이 다 났지만 모두가 왕을 두려워해서 다들 모른척했어. 왕의 여자인데, 줄을 서야 하지 않느냐고? 그게, 왕은 이미 아내가 여럿 있었거든. 다들 쟁쟁한 가문의 아가씨들이었지.

아무튼 무희는 왕의 끝없는 총애를 받은 끝에 임신했어. 왕은 무희를 하렘에 두고 살폈지. 누가 그를 건드리지는 않은지, 혹시나 해코지하려고 들지는 않은지. 낭만적이라고? 글쎄, 사람 얘기를 끝까지 들어봐. 다행히 무희는 바늘방석 같은 하렘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았지. 건강한 사내아이였어. 무희가 한숨 돌린 그날, 밤늦게 왕은 득달같이 찾아와 아기를 품에 안았지. 역시 감동적이라고? 아니, 진짜 얘기를 다 들어 보라니까.

다음날 아기는 죽었어. 음, ‘죽었다’고 발표됐지. 하렘에는 며칠이고 아이를 잃은 무희의 슬픈 노랫소리가 맴돌았다고 해. 그리고 며칠 후 고매하지만 재정적으로 몰락한 가문 출신이었던 후궁이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지. 몇 명은 그 후궁이 언제 임신을 했었느냐고 수군거리기도 했다던데, 음, 내가 왕이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했던가? 아무튼 아홉달 쯤 전에 왕이 그 후궁을 찾았던 건 사실이야. 아마도 엄청나게 운이 좋은 규수였던 거지.

왕은 사내아이를 낳은 그 후궁을 정실로 맞이했어. 늘 몸이 약해 왕을 제대로 모시지조차 못했던 그는 가문에 예상치 못한 영예와 부를 안겼지. 왕은 이미 아들이 많았지만, 병약한 몸으로 목숨 걸고 자신의 아들을 낳은 여인과 그 가문에 아주 후하게 대했어.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고 아이를 잃었던 무희는 귀한 왕자의 유모가 됐어. 무희는 왕자를 목숨처럼 사랑했지. 왕의 명령이기도 했고,-아무래도 왕은 창녀가 될 뻔한 무희의 은인이나 다름없잖아-왕자의 유모가 되면서 그도 조금은 귀한 이가 되었으니까. 친모인 정실은 몸이 너무 약해서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조차 없었지. 무희는 왕자에게 직접 젖을 먹이고 자장가를 부르며 재웠어. 아기 왕자와 유모는 모든 시간을 함께했지. 아마도 왕이 늦은 밤에 유모를 찾아오는 시간을 빼고는,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을.

무희가 아주 아름답고 희귀한 여자였다고 말했던가? 그는 그림자같이 어두운 피부에 찬란한 은발을 가졌어. 사람들은 그의 특이한 피부색을 두려워했지만 빛나는 은발과 아름다운 얼굴은 인정했지. 고대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면 무언가를 떠올렸을 수도 있겠지만, 아서라. 외간 사내들이 감히 하렘에 들어올 수 없지. 무희가 사막의 말을 할 줄 알았는지는 잘 몰라. 그는 왕자에게 늘 자신의 말로 속삭였지. 어차피 왕자에게는 그의 시중을 드는 유모 두엇이 더 있었어. 말했듯이, 왕은 이 왕자를 아주 아꼈거든.

왕자는 아주 명석했고 왕을 빼닮아서 강건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어. 그는 백일쯤 되었을 때에 걸었고 돌이 되기도 전에 유모들의 말을 따라했지. 왕자의 키가 자라면서 사람들은 그가 왕을 정말 닮았다고 했지. 왕의 머리색과 눈색을 다 닮은 이는 이 왕자밖에 없었어. 어린 시절의 왕처럼 왕자도 아주 아름다웠지. 무희는 왕자의 아름다움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을 몇 번 했어. 충성스러워, 그렇지? 왕자가 아름다운 건 왕을 닮은 거잖아.

왕자가 채 두 살도 되기 전에 정실은 세상을 떠났고 유모와의 시간도 오래 지속되진 않았어. 어느날 유모는 잠든 듯이 죽었지. 아마 험한 풍파를 거쳐왔던 세월이 그를 많이 녹슬게 했나봐. 믿을 수 없어 잠든 듯 누운 유모를 바라보는 왕자에게 왕은 몇 가지 말을 했지. 그는 내게 도움을 많이 주었다. 너도 언젠가 그런 도움을 찾을 수 있을 테지. 왕은 왕자의 조그만 머리통조차 만져주지 않으면서 말을 이었어. 그 도움을 찾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라.

…그때가 되면 너도 나를 이해하겠지.


왕자의 힘이 되어야 할 외가는 딸이 죽은 후 황급히 짐을 싸서 낙향했어. 가문은 외손주의 도움이 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음. 유모가 죽고 나자 왕자는 자기가 완전히 혼자 남았다는 걸 깨달았지. 어린 왕자를 떠받들던 사람들은 갑자기 그를 모른척했어. 순식간에 왕자의 유년 시절은 끝이 나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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